도전.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인간은 도전을 해야 한다.
도전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닐 수 있다.
그냥 평범한 사회 속의 사람일 수 있다.

인간은 도전을 하므로 성장한다.
도전은 고통을 동반한다.
인간의 삶과 자신의 성숙은 고통속에서 탄생한다.
도전은 곧 삶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안전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평탄한 삶이 즐거운 삶이라고 착각하면 안된다.

삶은 도전속에서 오는 고통과 외로움을 견딜 때,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목표가 있어야 한다.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목표를 가진 인간은 외로울 수 있다.
목표는 인간에게 강한 동기를 부여해 준다.
목표가 없는 인간은 그저 평범한사람일 뿐이다.
인간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

목표때문에 주위 사람들과 거리가 생겨 외로울 수 있더라도
인간은 목표를 가져야 한다.
목표는 크거나 작거나 상관없다.
목표는 장기적이거나 단기적이거나 상관없다.

목표가 달성되면 또 목표를 가져야 한다.
그렇게 이어가는 것이 삶이다.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에.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인간은 동물이 아니기에 최소한 외로운 시자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
집단을 추구하는 하이에나 무리에 속하는건 인간이라 말할 수 없다.
그런경우 때문에 인간이 동물에 속한다는 의미가 통하는 것이다.
정신이 육체보다 앞장서야만, 이성이 감성을 컨트롤 해야만 동물이라는 타이틀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행복 추구의 길은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인간이 행복만을 추구하려고 하면 그것은 인간이기를 거부하는것과 같다.
진정 인간은 고통과 인내를 즐겨야 한다.
힘든 것을 습관적으로 피하면 진정 인간이 되기 힘들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생각을 진지하게 하는 동물이다.

마음의 여유란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마음의 여유란
음악에게서?
친구에게서?
가족에게서?
사회속에서?
자연속에서?

마음의 여유는
나에게서 온다.


도대체 무슨 논리적 대화를...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사람은 서로가 대화를 한다.
그들만의 논리로 대화를 한다.
무언가 통한다고 공감하며 대화를 한다.
상대방의 상투적 지식이 풍부하거나
아니면 사회적 스팩이 좋거나 할때
대화가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상대방이 허술해 보이거나 지식이 없다고 느낄때는 무시가 대화를 장악해 버린다.
바보같은 사람이라 생각든다.
대화의 논리는 없다.
대화의 논리는 상대방의 존중에서 시작된다.
존중이 배려가 되어 무시가 없을때
진정 대화라 하는 것이다.

이성보다 더 높은 절대적 그 무엇.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이성보다 더 높은 절대적 그 무엇은 없다.
혹 종교적 신을 떠올렸다면 그는 함정에 빠진 이성을지닌 사람이다.
이성과 본성을 논하기전에 자신의 모습을 보라.
과연 그 모습이 진정 자신이라고 생각하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아니다.
가장 깊은 곳에서 움크리고 있는 자신을 깨우는자만이 제대로 된 인간의 이성을 컨트롤 할 수 있다.


지식이 먹은 인간. 올리스트의 진지한짬사

도시의 대부분은 지식이 먹은 머리를 가진 인간으로 숨 막혀 있다.
그들은 자석처럼 주절주절 상투적 지식 총을 쏜다.
언어 마술사라 불리우며 자연스럽게 그들은 지식을 나열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지식이 그들의 머리를 심킨것을 말이다.
지배 당하는것을 말이다.
아니라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
이미 그들은 벗어나기에는 너무도 차곡차곡 지식의 벽을 쌓아 올라, 더이상 돌아갈 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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